짱구가 없는 시간
지루하다.
재미없다.
조용한게 아니라 적막하다.
그런데.
왜이리 보고싶지가 않지?
아마 내일쯤 보고 싶어질라나?
여기에 눈 많이 왔는데.
썰매는 여기가 더 좋을낀데,,,ㅋㅋ
그치만 스키는 쫌 그렇다. ㅋ
열심히 놀다와라.
좀 더 커서와라. 뽈끈 안아주마.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심사위원 : 진동선 사진평론가 |
예부터 사진은 ‘발로 하는 것’이라 했다. 이때의 발은 시간이면서 동시에 기다림의 인내를 말한다. 지금은 이런 말이 회자되지 않지만 이를 아날로그 시대의 전설이라 말할 수 없고 흘러간 필름 시대의 추억 정도로 치부할 수도 없다. 사진은 분명 시간의 초상이고 시간으로부터 나온 시간의 자식이다. 사진을 발로 한다는 것은 시간을 몸소 체험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더 많은 시간을 온몸으로 마주한다는 육체적 대면의 소중함이다.
오늘의 포토에 작은섬(ljesse)의 <울릉도의 아름다움 #4>을 선정한다. 발로 찍은 아름다운 사진이다. 긴 시간을 오래 부둥켜안은 소중한 사진이다. 작은 섬의 사진은 흔히 비슷한 모습의 장 노출 사진과 다른 모습이고, 한 번쯤 찍고 싶어 시도된 흔한 호기심의 파편도 아니고, 혹은 긴 꼬리를 무는 현란한 불빛들이 아름다워 뱀꼬리처럼 휘어진 전국 도로들을 찾아다니는 열혈 마니아의 모습도 아니다. 작은섬의 블로그가 증거하듯이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찍은 것이고 그 아름다움의 하나로 담아본 ‘울릉도 풍경 #4’의 사진이다.
아름다운 사진의 태도는, 혹은 이상적인 사진의 태도는 좋아하는 소재가 분명히 있을 때이다. 또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분명한 대상이 있을 때이다. 작은섬이 선택한 ‘아름다운 울릉도 시리즈’는 그래서 참 보기 좋은 사진적인 태도이다. 이상적인 태도가 낳은 사진이 바로 지금 우리 앞의 사진이고, 이를 비롯 울릉도의 아름다움 #9, #11, #15도 같은 맥락의 발로, 온몸으로 맞이한 육체의 시간과 빛의 시간이 만난 향연이다.
사진을 보면 모든 것이 맞춤이다. 멀리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과 양쪽 어둠산 사이로 아름답게 휘감아 돌아가는 울릉도 서면의 수층교의 태극궤적이 어우러진다. 방법론적 측면에서는 그리 어려운 기법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저 정도는 나도 찍겠다’ 말할 수 있겠으나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 모든 것이 타이밍이다.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지속적으로 아름다운 울릉도 풍경을 찍었으면 좋겠다.